[수상] [신춘문예-시 당선작] 인견-안진영 / 2026.1.1.(목)

[신춘문예-시 당선작] 인견-안진영 



22_01_안진영

한참을 앉아 생각해보니 시를 만든 것은 분분(紛紛)하게 앞장섰던 발걸음이 아니라 멈추거나 되돌아섰던 순간들이었습니다. 하염없는 일이라 여겨놓고도 자꾸 반복하다보면 그 일은 점점 질겨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. 그땐 아무리 마음 모질게 먹어도 끊어낼 수 없습니다.

시냇물이 돌아나가는 곳에서 시작되는 마을, 산과 들 가지런한 논과 밭의 계절이 저에게 고스란히 유년이었습니다. 정미소 앞마당에 노랗게 날아오르던 쌀겨, 어둠이 웅숭그리는 큰 쇠바퀴 작은 쇠바퀴들 사이 사다리를 오르내리던 아버지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저녁 햇살에 고조곤히 잠기던 단풍, 별밤 뒤꼍, 귀룽나무 잎 지는 소리를 받아 적은 저의 말들이었습니다. 그것이 시였고, 그보다 더 좋은 시를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.

서설(瑞雪)이 내린 날 들여놓은 동백화분에서 첫 꽃이 피었습니다. 당선소식을 듣고 내뱉은 첫마디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말, 꽃핀 말 아니겠습니까.

말들은 새벽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행과 단락을 찾아갔지만, 다시 먼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응원을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. 기울어진 어깨를 매번 일으켜 세워준 가족들과 격려와 지지, 그리고 모든 가르침 앞에 머리를 숙입니다.

낮게 기울일 때에야 조용히 속삭여 주는 시의 방식을 고대하며, 시 이전의 순간을 오래 지켜보겠습니다. 침묵의 자리에서 천천히 다음 시를 기다리며 질겨질 대로 질겨진 일에 기꺼운 마음으로 이끌리겠습니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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